본문 바로가기
서양 여행기

코르시카 GR20 (1)

by 우산 신동호 2019. 5. 12.

 

 

코르시카-GR20 (1)

4천년 슬픔이 밴 섬나라, 코르시카를 가다.




지중해의 작은섬 코르시카.

나폴레옹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해서 몇번은 들어본 듯한 지명이지만,
내가 저곳을 애써 찾을 이유가 없던 곳이었는데...




TMB를 함께 했던 이분들 때문에 가게되었다.

북한산 산행을 하면서, 한분이 'GR20'이 멋진 트레킹 코스라고 소개를 했는데,
산행이 끝난 후에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모두 OK ! 해버렸다.




'GR20'은 코르시카의 대간을 남북으로 횡단하는 것으로,
직선거리 180Km를 보름동안 매일 오르내리는데,
산이 험해서 GR routes중 가장 힘든 구간에 속한다.

우리는 영국 exodus여행사의 상품을 선택했는데,
일부구간(corte-vizzavona)은 버스로 이동했다.
(노랑 선이 우리가 걸은 길인데, 약 150km정도 된다.)

신발끈 http://www.shoestring.kr/?c=good&f=detail&tourCode=SHT00635&mainTitle=0507
Exodus http://www.exodus.co.uk/holidays/tws/overview
GR20 http://corsica.forhikers.com/gr20




오랫동안 걷는 산책이나 운동을 뜻하는 '랑도네(Randonnée)'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며 건강도 챙길 수 있어서,
세계인의 휴식법으로 자리잡았다.

프랑스에선 이미 1947년에 전국걷기협회가 생겼고,
지금까지 18만 Km에 달하는 걷기 코스가 개발되었다고한다.




'그랑 랑도네(Grande Randonnée, GR)'는
유럽 전역에 걸쳐서 거미줄 처럼 연결된 도보여행길로,
아름다운 유럽의 자연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GR소개 http://en.wikipedia.org/wiki/GR_footpath

GR 구간에는 바위나 나무에 빨강과 흰색 페인트 칠을 해서 길 표시를 하고있다.




몇년 전에 걸었던 스위스 융푸라우 산책길에도 GR표시가 선명하다.




GR20은 히말라야나 몽블랑에서 만났던 경이로운 풍경은 없었지만,




바위와 바다를 벗 삼아 걷는 것이, 우리의 산을 걷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푸른 솔이 있고,




누렁이도 있고,







공룡능선까지 있었다.




때론 남도의 섬을 걷기도하고,




제주 올레도 걷고,




백록담의 매서운 바람도 맞았다.




계곡이 나오면 발도 씻고,




가이드가 손으로 잡아준 송어회도 먹고,




가끔은 이렇게 맛있는 저녁이 있어,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었지만,




매일 아침을 빵으로 때우고, 점심은 파스타만 먹어야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산행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의 유혹은,
술 근처에도 못가던 아줌마를 술꾼으로 만들었다.

Pietra맥주

Pietra는 이태리어로 '돌'이란 뜻이다. 바위가 많은 코르시카의 국민맥주다.
맥아와 함께 코르시카의 주요 농산물인 밤을 발효시켜,
특유의 맛과 황금색의 맥주를 만들었다.




이 섬의 밤나무는 높이가 20미터, 지름이 2미터에 이를 정도로 크게 자라고,
매년 1200톤의 밤을 수확한다고한다.




등산로에 밤꽃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10월과 11월에 밤을 수확하는 모습이다.
수확한 밤은 직접 먹거나, 잘 말린 후에 빻아서 밤가루를 만들어 여러 용도로 쓰인다.




코르시카를 양치기의 나라라 할 정도로, 목축업도 이곳의 주요 산업이다.




산에서 울타리도 없이 사육하는 돼지를 볼 수 있었다.




트레킹 내내 만났던 '보릿대국화(immortelle)'
향이 진했는데 화장품의 원료로 쓰인다고한다.




코르시카는 프랑스에 속하지만, 자국의 국기를 쓰는 곳이 많았다.

머리띠를 두른 흑인은 아프리카 북서부에 살았던 이슬람 종족으로
8세기에 스페인을 점령했던 '무어'인이다.('Moor's head')

무어인은 코르시카와는 직접 관계가 없지만,
그들의 용맹함을 외세에 대한 투쟁의 상징으로 코르시카 국기에 사용했다.




'Moor's head'는 사진과 같이 원래 눈을 가린 죄수의 모습이었으나,
1760년에 코르시카의 독립영웅인 Paoli가 지금의 모습으로 변경했다.




Monte Renoso 정상에서도 지중해를 바라보는 Moor's Head를 볼 수 있었다.




코르시카는 지중해 북부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겪는 비운에 시달려왔다.
1768년 프랑스에 넘어가기 전까지는 제노아의 일부였다.

19세기 내내 걸쳐 프랑스화(化)가 진행되었으나
고유문화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었고,
최근까지도 폭탄테러와 요인암살 등 과격한 자치요구가 이어져왔으나,

2003년 코르시카 자치권 확대 법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에서는 ,
반대 50.98%, 찬성 49.02%로 자치권 확대 반대를 선택했다.

섬에 사는 주민이 30만 정도인데,
경제적인 이유로 프랑스 본토와 주변국으로 떠난 사람이 70만일 정도로
열악한 현실이 자치권 확대를 꺼린 것 같다.

아래 코르시카 음악을 소개한 기사에서 그들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세계음악기행] 4천년 슬픔이 밴 코르시카

경향신문| 기사입력 2004-06-10 19:16 | 최종수정 2004-06-10 19:16
김정민 기자

프랑스에 예속되어 있긴 하지만
코르시카는 그 자체만으로 독립되어 있는 섬나라다.
자신들만의 국기와 국가를 지님으로써 프랑스인이 아닌 코르시카인임을 자부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4,000년에 걸쳐 일궈 오고 있다.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지중해 북부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겪는 비운에 시달려왔다.
그리스와 로마, 카르타고 등과 같은 강국들이 패권을 다투었으며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는 이슬람문화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1768년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면서
외세의 영향이 단일화되었지만
독립을 향한 코르시카인들의 의지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 결정지을 수 없는 슬픈 운명 속에서도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코르시카의 음악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중세유럽의 가톨릭문화와 지중해 특유의 낭만적 감성,
그리고 지난한 투쟁의 역사에서 결집된 단결력은
코르시카 음악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때로는 맞서 싸워야 하는 거친 섬 문화의 특성으로 인해
남성 위주의 합창이 발전한 것 역시 코르시카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남성합창은 세 성부로 이루어진 폴리포니 형식으로 불리는데,
오늘날 대외적으로 코르시카의 음악문화를 표현하는 대명사 역할을 하고 있다.

중간음역을 뜻하는 세콘다가 주 선율을 담당하고,
고음부인 테르자는 장식음을 가진 화음을 표현하며
이러한 곡의 흐름을 저음부인 바수가 원활하게 지탱함으로써
폴리포니는 구조적인 안정감과 중후한 매력을 발산한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폴리포니 가창형식은
강한 연대의식과 민족적 정체성이 절실한
코르시카의 현실을 확고하게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코르시카 음악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선봉장으로는
26년의 역사를 지닌 그룹 이 무브리니(I Muvrini)를 꼽을 수 있다.


I Muvrini et les 500 Choristes Diu Vi Salvi Regina
이 무브리니가 500명의 코러스와 함께 부른 노래.

 



I Muvrini (처음엔 아버지와 두형제가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역사는 묻어 두고, 우리는 보름간의 코르시카 여행을 시작한다.

2013.07 GR20, Corsica

(계속)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