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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쓰기

신록예찬

by 우산 신동호 2019. 5. 13.

신록예찬(新綠禮讚)


지난 주말 뒷산 오르는 길에

졸참나무의 꽃을 봤다.

왼쪽에 수꽃이삭, 오른쪽엔 너무 작은 암꽃.



간절히 바랬던 수정.

주변에서 모여든 개미들이 도왔다.


수정 후의 열매는 나무가 되고,


개미보다 작은 꽃에서 거목이 탄생했다.

그야말로,

"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

"



이렇게 경이로운 봄 숲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않은가 ?



신록예찬(新綠禮讚)
- 이양하(李敭河)


교과서에 실렸던 신록예찬은,

어려운 단어가 많고 따분한 글이라,

억지로 읽었는데,

이제는 일부러 찾아서 읽는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

"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

Greensleeves - Celtic Ladies


"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

"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


"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

"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말고,

우리 연전(延專) 일대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

"

"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 시간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 놓은 듯이 옷을 훨훨 떨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

"

나의 자리래야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 가는 여러 동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命名)하여 주고,

또 나 자신도 하룻동안에 가장 기쁜 시간을

이 자리에서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나는 한 특권이나 차지하는 듯이,

이 자리를 찾아 올라와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

"

물론, 나에게 멀리 군속(群俗)을 떠나

 고고한 가운데 처하기를 원하는 선골이 있다거나,

또는 나의 성미가 남달리 괴팍하여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

"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갑남을녀(甲男乙女)의 하나요,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이러한 때―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授受)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

"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사람이란― 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 칠정(汚辱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

"

마음에 영일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

"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 또는 한 잡음 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

"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서,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가지로

숨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

  "

그리고 또,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

"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

"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의 흉중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에도 신록이다.

"

"

주객 일체, 물심일여라 할까,

현요하다 할까, 무념무상, 무장무애,

"

"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의 고갈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의 유열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 

"

"

그리고 또, 이러한 때에 비로소

나는 모든 오욕과 모든 우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의 상극과 갈등을 극복하고 고양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

   "

그러기에,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 염천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

"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

"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淡綠)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

"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혹 2, 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 4일이 되지 못하여, 그

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  

"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

"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는 낙엽송을 보라.

"

"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즈음의 도토리, 버들,

또는 임간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雅淡)한 향훈(香薰),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極致)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끝)




[레벨:9]헐크

2019.05.01 18:41

그야말로 실록예찬 입니다.

보여 주시는 사진도 덧붙힌 글귀도 몽땅요~

감사한 자연에 늘 감사하고 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감사히 보았습니다.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1 19:55

    정말 아름다운 계절이죠 ?

    감사합니다~~^^

    댓글

  • Profile

    [레벨:6]아이디카

    2019.05.01 19:21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이양하 님의 신록예찬!

    우산님의 멋진 구성과 배경음악과 함께 읽으니 정말 좋아요.

    그런데.... 글이 신록예찬이기는 하지만...

    사진을 보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같기도하고...ㅋㅋㅋ =3=3=3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1 19:56

    이번엔 다른 모델도 많이 동원했는데 ?

    놀리지말고 모델 쫌 구해주소...ㅋㅋ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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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6]하늘아래

    2019.05.01 19:22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멋진 봄 날의 소경이네요. 고맙습니다.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1 19:57

    지난 휴일에 졸참나무 보고서 글이 떠올랐는데,

    예전 사진 모으느라 고생했어요.

    고맙습니다~~^^

    댓글

  • Profile

    [레벨:5]유유

    2019.05.01 20:35

    와우~~

    작가가 따로 없네요

    당장 책 한 권 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대단한 실력에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1 21:14

    유유님, 저는 도입부만 썼고,

    수필가 이양하님의 글에 제 사진만 붙인거예요.

    위아래 인용부호도 붙였잖아요.

    너무 겁 먹지마셔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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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4]지구촌

    2019.05.01 23:14

    예 ~ 글과 사진 참 멋집니다.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2 15:25

    감사합니다.

    댓글

  • Profile

    [레벨:4]김휴

    2019.05.02 05:09

    바를 내리면서

    그냥 힐링이 되는듯 하네요.

     

    좋은 글과 사진들,

    이 아침 잘 느끼고 갑니다^^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2 15:26

    김휴님이 힐링이 되었다니,

    저도 힐링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 Profile

    [레벨:6]청안(淸安)

    2019.05.02 10:21

    우산님이 기행문에서 발전하시더니 이제는 작가로 등단하셔야겠어요.

    다양한 봄날의 사진과 모델들 섭외(도촬하신듯~?) 하시느라 수고 하셨어요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2 15:28

    맞아요 대부분이 도촬이죠.

    느낌이 오는 순간을 놓칠 수가 없었어요.

    지체하면 빛이 사라지고 자세가 바뀌고,

    느낌 없는 사진이 돼버리죠~~^^

    댓글

  • Profile

    [레벨:6]황소/김형소

    2019.05.02 20:36

    너무나 짧기만한 봄날 이렇게 남겨 놓으니 영원히 이어질껏 같습니다. 무더위가 와도 화려한 가을이 지나 하얀겨울에도 찾아서 실록예찬을 즐기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7 14:28

    언제나 신록이면, 구록은 어찌하라구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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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5]함초롬이

    2019.05.02 22:06

    우산님 글과 사진에서 언제나 위안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7 14:32

    제 글이 위안이 된다니 감사해요...^^

    댓글

  • Profile

    [레벨:4]한달음

    2019.05.02 22:08

    너무 좋은 데~

    정말 너무나 좋은 데~

    너무 짧아요...

    부지런히 쫒아가도 금방 사라져 버려서...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7 14:31

    맞아요. 너무 짧은 봄~~

    댓글

  • Profile

    [레벨:3]겨울산

    2019.05.06 01:34

    다음엔 청춘예찬 인가요^^.ㅎ.

    아주 오래된 추억을 꺼내어 봅니다^^.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7 14:31

    다시 태어나면 청춘예찬 해봐야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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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5]물푸레

    2019.05.06 09:58

    그 아름다운 신록이 아직 곱게 보존되어있네요

    오늘은 바람이 불고 어디선가 꽃잎들이 떨어지고있겠지요

    댓글

  •        

    [레벨:5]우산

    2019.05.07 14:30

    넵, 꽃잎 떨구려고 꽃이 피는 거니까요...^^

    감사합니다.

    댓글

  • [레벨:6]雲竹/꼬꼬마

    2019.05.09 20:41

    우산 님이 학교 다닐때 공부를 꽤 잘 했었구나 생각하며 봅니다

    국어시간에 배운 기억이 저는 가물거려서 ㅎ~

    댓글

  • Profile

    [레벨:3]라노

    2019.05.09 23:41

    개제되는 글과 사진이 어찌 이리 자연스럽고

    밖으로 나가게 충동을 하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근데 저는 끼(?)가 많았나봐요.

    신록 예찬은 밋밋한데 오히려 청춘 예찬이 생생한 걸 보니,,,,^^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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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6]조피디

    2019.05.10 11:12

    좋은 글도 교과서로 접하면 어렵기도 하고 지루하게 다가왔는데 이렇게 글의 내용과 맞는

    사진과 함께 보고 읽으니 따분했던 수필에 날개를 달아주신 듯 새롭게 다가오네요.

    우산님의 맛깔나는 글과 사진.... 언제보아도 즐겁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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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3]용담

    2019.05.10 13:00

    언젠가부터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고 산과 들에 있는 푸르름도 아름답구나 느꼈습니다.

    꽃이 피는것이 잠간이듯 나무들도 새옷을 갈아입는게 어찌나 빠른지

    아름다운 모습에 홀려서 운행중인 차를 갑자기 세울수도 없고...번번이 기회를 놓쳐서 아쉬웠는데

    우산님이 글을 올리셨네요. 감사히 읽었습니다.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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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3]마음

    2019.05.11 11:08

    우산님의 글솜씨야 산행기를 읽으며 익히 알고 있지만

    신록예찬 글에 딱 맞는 사진을 찾아 편집하시는 솜씨도 수준급이십니다.^^

     

    글을 읽어내려가니 숲에서 느끼는 감성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어

    저도 숲으로 뛰어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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