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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쓰기

꽃며느리밥풀 이야기

by 우산 신동호 2019. 5. 12.



가난한 집 딸이 12살 어린 나이에 군 입을 하나 덜어주기 위해서 시집을 간다.
당연히 빈손으로 시집 올 뿐이어서
소처럼 일을 해대도 시어머니와 남편의 박대 속에 보리밥 한 그릇 제대로 얻어 먹질 못했다.





어느해 겨울, 폭설이 천지를 뒤덮던 날.
부엌에서 밥을 하던 나이 어린 계집이 뜸을 재기 위해 주걱에 붙은 밥풀을 입에 대다가 시어머니 눈에 띄어
"어른 몰래 어른보다 먼저 배 채우는 집안 망칠 년"으로 흉이 잡혀 계집은 그날로 쫓겨났다.

엄동설한 갈 곳이 막막하여 폭설 속을 헤매던 계집은 기어코 얼어 죽었다.

이듬해 계집이 누웠던 자리에서 볼품없는 꽃 한송이가 피었다. 영낙없이 굶주려 죽은 계집의 형상이었다.
이 때부터 온갖 잡놈들이 너도 나도 그 꽃을 "며느리 밥풀꽃"이라고 위안 삼아 불렀다.
제 배 채우려고 팔아 넘긴 제 계집이나 딸년들에게 속죄라도 되는 듯이...

'꽃며느리밥풀'의 아래 입술에 붙어있는 밥풀에 얽힌 사연인데,

이현세씨의 만화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물론 들은 얘기를 글로 옮긴 것이겠지만, 속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 공감을 하는거겠죠.

지금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보는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고부 간의 갈등 속에 어렵게 사는 여인들이 많아 보입니다.
아픈 몸으로 병원에 와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이 많거든요.

제 아내도 갱년기 우물증으로 어렵던 시절에 많이 울었습니다.
시집살이 와서 힘들었던 일과 중간에서 아무 역할도 못해준 남편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겠지요.





11살 소녀가 강간당한 후에 살해당했다는
네팔 작은 마을의 추모비를 보고, 그곳도 어렵게 사는 여성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기 어려운 나라일수록, 약한 자가 더 살기 힘든 것은 당연한거겠죠.





동생을 업은 아이의 모습은, 우리 어렸을 적에 흔히 보던 모습이죠.
이렇게 여인의 삶은 힘들게 시작합니다.





시집을 가서 갖은 풍파를 다 겪고.





이제는 백발이 되어 쉴 때가 되었지만.





아직도 쉴 수가 없습니다.



*********************

자메이카의 세계적인 뮤지션인 밥 말리의 노래 - No, woman, No cry - 를 들어보면,
이세상 어느 곳의 여인이나 비슷하게 살고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

여성이여 울지말아요..

Said - said - said: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town,
Oba - observing the 'ypocrites
As they would mingle with the good people we meet.
Good friends we have, oh, good friends we've lost
Along the way.

정부 기관 마당의 트랜치 타운에서 나는 우리가 앉아 있곤 했던 때를 기억해요
우리가 만난 좋은 사람들과 섞여서 위선자를 관찰했어요
가는 도중에 우리가 가진 좋은 친구들, 오, 우리가 잃은 좋은 친구들

In this great future, you can't forget your past;
So dry your tears, I say.

이 위대한 미래에, 당신은 과거를 잊을 수 없어요;
그래서 당신의 눈물을 닦으라고 나는 말해요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Ere, little darlin',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여성이여 울지 말아요
여성이여 울지 말아요
어여쁜 소녀여, 눈물을 흘리지 말아요
여성이여 울지 말아요

Said - said - said:
I remember when-a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town.
And then Georgie would make the fire lights,
As it was logwood burnin' through the nights.
Then we would cook cornmeal porridge,
Of which I'll share with you;

정부 기관 마당의 트랜치 타운에서 나는 우리가 앉아 있곤 했던 때를 기억해요
그리고 조지는 밤 새도록 로그우드(장미목의 나무)를 태울 것 처럼 불을 피웠지요
그러면 우리는 당신과 함께 나눌 밀가루 포리지를 요리했어요

My feet is my only carriage,
So I've got to push on through.
But while I'm gone, I mean:

나의 두 발이 나의 유일한 운송 수단이예요
그래서 나는 밀고 나가야 했지요
그러나 내가 간 동안, 그러니까: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
I said,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a!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now!

모든 것이 잘 될 거예요 ..
난 말했어요 모든 것이 다 잘될 거예요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예요, 이제는

So, woman, no cry;
No - no, woman - woman, no cry.
Woman, little sister,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그러니까 여성이여 울지말아요
노, 노 여성이여, 여성이여, 울지 말아요
여성이여, 자매여, 눈물을 흘리지 말아요
여성이여 울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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