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양 여행기

四川유람(8) 마지막 이야기

by 우산 신동호 2024. 8. 5.

6월 14일 상르우체 - 거시초원 - 라오위린객잔

무서웠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휴대용 산소는 잠깐씩만 효과가 있었다. 흡입 후에 산소포화도가 잠깐 올랐다가 원 상태로 돌아간다. 스프레이를 많이 눌러서 손과 팔도 아프고...
 
 

오늘도 르도메인으로 오르는 등산객이 보인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짐을 꾸려 산을 내려간다. 
 
 

 

Chopin: Ballade No.1 In G Minor, Op.23
조성진
 

 

아내는 팔과 다리의 움직임은 괜찮았는데  왼쪽으로 몸이 기울어 쓰러질 것 같았다. 고산병으로 평형감각에 문제가 생겼다. 부축을 하며 내려가는데 불안했다. 
 
 

동료의 결정으로 내려가던 말을 다시 불렀다. 아내와 내가 말을 타기로 했다. 마부와 가이드가 교대로 아내의 말을 이끌고 나는 뒤를 따랐는데, 아내의  자세가 불안했다. 조금 기울면 소릴 질러 바로잡았다. 잘 알아듣는 것을 보니 정신은 괜찮았다. 낭떠러지의 좁은 길을 지날 때 무서웠다. 오를 때는 앞으로 숙이고, 내려갈 때는 뒤로 젖히라고 소릴 질렀다. 다행히 사고 없이 내려왔다.
거시초원에 도착하니 짐을 실을 차가 기다리고 있다. 말에서 내려 아내를 걷게 했다. 얼굴색도 좋아졌고 비틀거리지 않았다. 아내를 껴안고 울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천국이다.
 
 

동료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동료들도 사고 없이 잘 내려왔다.
 
 

마방 주인이 우릴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 만찬을 즐겼다.  장족 4대가 행복하게 사는 곳이다. 안주인이 수유차를 만들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는 아우가,  안주인이 채취한 동충하초를 구입했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가족을 위한 선물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바로 잤다. 시설은 허술했지만, 깨끗한 전기담요와 화장실에 히터가 있어 편하게 샤워하고 잠들었다. 제일 맘에 드는 숙소였다.
 

6월 15일 라오위린 - 옥룡서촌(玉龙西村/3,900m) - 렁가춰(冷嘎措/4,545m) - 캉딩(2,700m)

 새소리, 닭 우는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하는 아침.


아내는 편히 잤고, 나는 기침을 많이 하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아내는 완전히 회복됐다. 고마웠다. 모닝커피를 마시고 짐을 챙겼다.

 

옥룡서촌까지는 197Km 5시간 50분이 걸린다.

캉딩을 벗어나며 왕복 2차선에서 치열한 추월전이 아슬아슬했다. 산을 넘는 바이크족도 많이 보였다.


해발 4,300m의 절다산 고개를 넘었다. 고갯마루에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있다. 아내는 컨디션이 회복됐지만 계속 졸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창밖 풍경에 지루하지 않았다.
 
 

 

산불이 남긴 공가산의 가을.
가을을 느끼고 있는데 차가 멈췄다. 모두 차에서 나와 애를 태우는데, 빈 틈새로 끼어드는 얌체족도 있다. 철의 여인이 공사현장으로 가서 사진을 찍어와 궁금증을 풀어줬다. 산사태로 끊어진 전기를 복구하고 있었다. 다행히 복구공사가 빨리 끝났다. 도중에 국숫집에서 우육면을 먹었다.
 
 

오후 3시경에 옥룡서촌(玉龙西村/3,900m)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었지만, 정전으로 난방과 통신이 끊겨 불편했다. 아내는 다시 힘든 표정이었지만, 주변 산책으로 적응이 될 것 같았다.  
 
 

렁가춰 입구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렁가춰는 호수 위의 공가산을 보는 곳이다. 호수까지 걷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말을 타고 오르고(1시간), 걸어서 내려온다(1시간 15분). 아내는 고산병이 계속돼 가이드와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렁가춰(4,542m)에 올랐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와 구름에 갇혀, 공가산 반영은 커녕 흔적도 볼 수 없었다.


호숫가에서 오래 기다렸지만 구름이 걷히지 않았다. 비바람을 맞으니 추웠다.
 
 

 

철수~~
 
 

간간이 꽃이 보였다.
 
 

말과 바이크가 부지런히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그날의 공가산은 이렇게 끝났다.
 
 

티켓에 이런 사진이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려고 구글어스에서 캡처한 그림에, 포토샵 AI로 반영을 만들고 은하수를 붙였다...^^
 
 

돌아오는 길에 구채구와 비슷하다는 '취안화탄'이 있었는데 시간이 늦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내가 힘들어했다. 나도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머물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에게 차와 운전수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친절한 가이드는 주변을 수소문해서 픽업트럭과 운전하실 분을 모셔왔다. 수고비도 1,200 위안(24만원)으로 너무 싼 금액이다. 고산병 환자를 돕기위한 마음으로 이해했다.


비 오는 밤에 장거리운행이 부담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지인만 다닐 수 있는 지름길로 갔는데 차선도 없는 위험한 산길이다. 조수석의 가이드가 운전을 도왔다. 아내는 입술이 파랗고 호흡곤란과 함께 무기력해졌다. 30Km를 달려 3,500m 아래로 내려가니 조금 편해졌다. 주변이 온통 4,000m 이상인 곳에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얼마나 괴로웠을까? 휴대용 산소를 마시고 물을 자주 마셨다. 4,600m를 넘을 때 힘들었고, 절다산 4,300m 고개에서도 아내는 계속 졸았다.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마셨다. 가이드는 수시로 아내의 상태를 살폈고, 외투를 벗어주면서 저지대에선 눈을 붙이라고 권했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손님에게 진심인 가이드는 처음 만났다. 2000년생 MZ세대의 선한 가치관인가?...^^
 
 

3시간 30분을 달려, 자정 무렵에 해발 2,700m의 호텔로 내려왔다. 체크인을 하고 아내를 살피며 허둥대다가, 운전수에게 감사 인사도 못했다. 친구의 집에서 묵는다고 한다. 아내의 혈색도 돌아오고 걸음도 정상이 됐다. 이제 살았다. 나는 기침을 많이 해서 제대로 잠을 못 잤지만, 아내는 편안한 수면에 빠졌다.
 
 
6월 16일 캉딩, 공가사

만약에 대비해 가이드가 가져온 산소통은 저지대에선 필요 없었지만, 이런 것을 준비한 것에 놀랐다.
 
 

다음날에 몸이 거의 회복됐다. 아내는 입술이 터지고, 나는 코가 터졌다. 고산병에서 벗어난 행복한 아침. 가볍게 식사를 하고 다시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가이드의 권유로 캉딩의 사원과 박물관 구경을 했다. 
산소통 파는 가게가 있는 것을 보니, 우리처럼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관광객이 많은가 보다. 저녁엔 훠궈를 먹었다. 곰탕 국물에 자연산 버섯과 야채가 들어갔고, 소고기도 끝없이 나왔다. 가이드가 반대했지만, 이젠 고산에서 벗어나 마셔도 된다고 설득하고 맥주 두병을 주문했다...^^  친구가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데, 본인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 시간에 동료들은 공가사의 멋진 풍경에 취해있었다. 바이크를 타고 올랐는데, 체인이 빠져 넘어지고, 계곡으로 구르고...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첫 경험에 재밌었단다...^^
 
 

덕분에 우리도 공가산을 볼 수 있었다.
 
 

 

 

캉딩의 저녁은 활기가 넘쳤다. 거리에서 장족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체조와 춤을 즐기는 중국.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는 좋은 전통이다. 부러웠다. 통신이 끊겼던 동료에게 전화를 받았다. 좋은 날씨에 멋진 구경을 하고, 모두 건강엔 문제가 없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잘 시간이다.

 
6월 17일 캉딩

캉딩의 아침이 구름에 젖었다. 
 

편안한 아침. 오랜만에 KBS FM을 들으니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몸은 완전히 회복됐다. 아내의 밝은 표정에 행복했다. 점심경에 옥룡서촌에서 온 동료들을 만났다.
  

 

청두의 호텔로 들어가니 TV에서 환영 메시지가 나온다. 오랜만에 면도를 하니 얼굴이 시원하다...^^

 
 

청두에서의 마지막 만찬.
힘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즐거움만 가득한 시간이었다. 맥주 20병과 10가지 요리에 580위안이었다. 착한 가격에 다시 놀랐다. 현금이 필요해서 ATM을 이용했는데, 계속 에러가 났다. 비밀번호 6자리를 우리 번호 4자리에 "00"을 채우는 것, "****00"을 몰랐다. 결국 가이드에게 알리페이로 추가 결제를 하고 현금으로 받아서, 고마운 그들에게 개인 팁을 선물했다~~^^
 

 
6월 18일 청두 - 인천

5시 30분에 호텔에서 나와 픽업 버스를 탔다. 호텔에서 제공한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텐푸 공항에 도착했다. 등산스틱을 기내수화물인 배낭에 넣었는데 안된다고 한다. 국내선에선 가능했는데...  탁송료가 무려 500위안이었다. 그냥 기증하고 싶었지만 아들의 선물이라...ㅠ.ㅠ

서울에 돌아오니 체중이 3Kg 줄었다. 이제 무조건 먹을 일만 남았다...ㅎㅎㅎ

 

우릴 뜨겁게 돌봐준 가이드와
 

동생들에게 무한 감사,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합니다~~^^

 

셀린 디온 '사랑의 찬가'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 불사조 같이 나타나서 낭랑한 목소리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희망을 선물한, 셀린 디온. 당신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끝)
 
※ 사족
5년 전에 5,000m 이상을 올랐던 것만 기억하고 나이 먹은 건 생각 못했다. 고산병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고, 이렇게 지독한 고산병도 처음 겪었다. 무모한 산행이었다. 앞으로는 고도를 낮추고 철저히 준비를 하고 살살 다녀야겠다...^^

댓글